건강한 음식 공부

감자3

해올777 2024. 7. 1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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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에 이어서 그 외 다른 나라들.


-영국
월터 롤리 경이 스페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감자를 들여왔다는 설이 있다. 또 유럽 지역과 달리 가장 늦은 19세기 중반 이후에야 감자를 식품으로 받아들였다. 
그간 아일랜드가 감자를 주식으로 삼자 ‘돼지 사료를 먹는 미개하고 지저분한 민족’이란 비난을 퍼부었는데, 16세기 단행된 종교개혁으로 반교황 주의와 식민지 지배 민족으로서 우월감에 입각한 발언이었다.
1765년에는 ‘감자는 가라. 교황 주의자도 가라’라는 구호로 감자를 정치도구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고 인구 증가와 더불어 19세기 기근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점차 감자를 식품으로 받아들였다.
1860년 조셉 말린은 흰살생선과 감자칩을 함께 튀겨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 이 튀김 요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전역으로 퍼졌다. 피시앤칩스라고 불리는 이 패스트푸드는 열량이 높아 힘든 육체노동을 하던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적합한 음식이었다.
1차대전이 발생하고 노동력이 감소하고 공습으로 작물 피해가 증가하게 되자 영국 왕실은 버킹검 궁전 앞에 감자와 채소를 심어 모범을 보이며 영국인들에게 개인 채원 만들기와 감자재배를 권장했다.
영국 교회도 특별조례를 통해 일요일에도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일은 1930년 경제 대공황이나 2차세계대전 시에도 감자는 구황작물로서 역할을 감당했다. 2차대전 당시 처칠이 피시앤칩스를 ‘좋은 반려자’라고 했을 정도로 영국인들의 지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컴포트 푸드였고, 오늘날 피시앤칩스는 영국의 대표 음식에 속할 수 있었다.

-미국

패스트푸드의 나라인 미국에 감자가 전래한 것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건너가 서부를 개척한 17세기 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파리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할 땡 감자요리를 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파르망티에가 개최한 연회에 자주 참석했던 것 같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후임으로 미국 초대 주 프랑스 대사를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파리에서 먹었던 감자튀김을 미국 대통령이 된 이후 1802년에 백악관에서 소개했다. 프랑스식 감자튀김이라고 표현했으며 프렌치프라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그 일 이후 점차 미국인들이 감자를 식품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1845년 발생한 아일랜드 대기근 이후 북미대륙으로 집단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은 새로운 터전에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이로써 감자는 미국 땅에 식품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감자를 아이리시 감자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20세기 들어 세계대전을 치르며 곡물생산량이 급감했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감자를 홍보하고 재배를 장려했다. 이후 미국의 감자 소비량은 많이 증가했다. 
전후에도 미국의 식탁에서 햄버거, 스테이크, 치킨과 함께 빠지지 않고 오르는 음식에 감자튀김도 속하게 되었다.
미국의 감자 생산량은 약 2천만톤으로 세계 5위이며 아이다호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어 ‘감자의 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선호하는 감자는 러셋감자로 생산되는 감자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벨기에
16세기경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 전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감자튀김 박물관 측의 주장에 의하면, 스페인 테레사 수녀가 개발한 감자튀김 요리가 벨기에에 전해져 보편화 되었다고 한다.
벨기에 역샇학자 조 제라르 역시 1680년대 벨기에의 뫼즈강 유역에서 작은 생선을 튀겨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강물이 얼어 물고기를 못 잡자 감자를 길게 썰어 튀겨 먹었다고 한다. 점차 감자를 식품으로 받아들인 벨기에는 1인당 감자튀김 섭취량이 가장 여러 유럽 국가이기도 하다.
벨기에는 지역마다 감자튀김 전문점이 있으며, 집집마다 비법 레시피가 존재한다. 감자튀김은 프랑스와 원조논쟁을 벌리고 있다. 세계 최대 감자 가공품 수출국 중 하나이기도 하며, 세계 유일의 감자튀김 박물관도 가지고 있다.

-중국
전세계에서 감자를 가장 많이 생산한다. 하지만 언제, 어떤 경로로 감자가 전해졌는지에 정확한 자료가 없다. 명나라 만력제 시대 유입되었다고 일부 중국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다. 최초의 기록은 청나라 강희제 때 쓰여진 “송계현 현지 식화”라는 책이다. 대만은 17세기 네덜란드 인에 의해 전해졌으며, 1914년 본격적으로 재배했다.

-일본

여러 설이 있다. 
1598년 네덜란드인에 의해 전해졌다는 게 정설이다. 자바섬의 자카타라를 경유하여 나가사키에 전해졌다. 하여 자카타라이모로 불렸으나 단축되어 자가이모로 불린다. 에도시대 이후 쌀 재배에 불리한 산간, 한랭지에 보급되어 재배되었다. 각 지방마다 다양한 이름이 존재하며 품종도 다양하다. 
에도 막부 후기, 러시아의 영향으로 훗카이도 동북 지방에서 기근을 대비한 작물로 재배되었다.
에도 후기 가이국의 대관이었던 나카이 세이타오가 감자 재배를 장려했다. 향화 원년 아마나시 고후에서 감자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에도 후기에는 훗카이도 아이누도 감자를 재배했다.
간세이 연간, 탐험가 모가미 토쿠나이가 현재의 도야코쵸 아부다에 씨감자를 반입했다. 그리고 아이누에게 재배시킨 게 훗카이도의 감자 전래라고 한다.
본격적인 재배는 메이지 유신 이후이다. 
‘감자판관’이라는 별칭으로 부린 초대 네무로 현령에 의해 보급되었다. 가와타 류키치 남작이 영국에서 남작품종을 도입한 후 정착되었다. 처음은 서양요리의 식재료였고, 서서히 일본의 가정 요리에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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